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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

황동규 – 조그만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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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문학과지성사, 1978) / 시선집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 황동규(黃東奎) : 1938년 4월 9일 평남 영유군 숙천 출생. 아버지가 소설가 황순원.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수학.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떤 개인 날』(중앙문화사, 1961) 『비가』(1965/ 재판, 문학동네, 2004), 연작 시집 『풍장』(문학과지성사, 1999),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문학과지성사, 1994) 『몰운대행』(문학과지성사, 1991) 『미시령 큰바람』(문학과지성사, 1993) 『악어를 조심하라고?』(문학과지성사, 1995) 『외계인』(문학과지성사, 1997)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문학과지성사, 2000)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사, 2003) 『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 2006) 『겨울밤 0시 5분』(문학과지성사, 2009/ 복간, 2020) 『사는 기쁨』(문학과지성사, 2013) 『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 2016) 『오늘 하루만이라도』(문학과지성사, 2020) 등과, 시선집 『열하일기』(지식산업사, 1982) 『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삶을 살아낸다는 건』 외에 『황동규 시전집 1ㆍ2』(문학과지성사, 1998) 등 다수가 있다. 옮긴 책으로 바이런의 『순례』, 예이츠의 『1916년 부활절』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

이해와 감상

 

이 시는‘당신’으로부터 과거의 추억을 단절하는 이별의 편지를 받은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는 과거와의 단절을, ‘깨어진 금’은 깨어진 추억의 상처를 뜻한다. 화자는 더 이상 과거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도 사라진 절망적 상황에 빠져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들은 과거 당신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돌들마저도 화자를 외면한 채 추억을 더듬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대를 사랑하는 감정은 여전하여 이별의 아픔으로 인한 슬픔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화자의 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화자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고 있다.

 

이 시는 이와 같이 사랑에 대한 노래라는 해석 외에, 1970년대 암울했던 시대의 고통과 상처를 다룬 노래로도 이해할 수 있다. 독재 정권 시절 속의 화자는 과거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현실은 과거 함께 놀던 돌들마저도 얼굴을 가리고 박혀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현실은 추위가 가득한 ‘저녁 하늘’로 묘사되고 있다. 과거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화자는 예민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적 상황 속에서 떨며 이 세상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떠도는 ‘눈(雪)’과 같은 처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해법문학 현대시 고등』, 천재교육 편집부, 천재학습백과

  황동규 시인에게는 유명한 작품이 많다. 그중에 ‘즐거운 편지’라는 시가 있다. 제목은 즐거운데 내용은 내내 즐겁지 않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아주 조금 미소 지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황동규 시인의 작품에는 의외의 제목, 생각거리를 툭 던지는 제목,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제목이 많다. 이 시도 마찬가지다. 제목만 보면 나이 어린 청춘의 풋풋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인가 싶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달콤은커녕 씁쓸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 이것은 얻으면서 풍족해지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잃어버린 외로움이 가득하다. 시의 배경도 겨울, 그것도 추운 저녁, 성긴 눈이 내리는 때다. 마음이 쓸쓸한데 몸마저 춥다니 그대 잃어버린 빈자리를 확인하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다.

 

 왕년에 아픈 사랑 좀 해보았다는 사람만 이 시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 작품에는 감정적 공감대 말고 매력적인 부분이 또 하나 있다. 시는 많은 말을 담고 있지 않지만 읽다 보면 영화를 보는 듯하다. 마치 내가 시 속의 화자가 되어 추운 겨울 거리를 거닐고, 하늘을 쳐다보다, 떠다니는 눈송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겨우 13줄일 뿐인데 상상의 필름은 좌르륵 돌아간다. 이 작품이 발표된 지도 벌써 40년이 넘어가는데 오래 기억에 남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 동아일보 2023. 1. 14.

 ‘어제를 동여맨 편지’라니 참 멋진 표현이다. 길이 사라지면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기 마련이나, 뒤가 반복되며 서로를 부정하는 행이 시적 긴장감을 높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다. 공기놀이를 하도 해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는데, 내가 갖고 놀던 돌은 다 어디로 갔을까.

 

 7행까지 언어의 밀도가 높다가 8행에 ‘사랑한다’는 상투어를 두번 반복했다. 꽉 조였다 풀어주는 기술. ‘사랑한다’보다 강력한 언어는 없다. 어떤 비유도 ‘사랑’을 넘어서지 못한다. 사라지고 깨지고 떠다니는 이미지들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서정시. 황동규 선생이 마흔 살에 발표한 시라는데, 젊으니까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이고 추위도 환할 수 있다. 젊으니까 실연의 아픔도 아름다운 시가 되고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떠다니는 눈(snow)이 눈(eye)을 찔러….

 

최영미 시인 / 조선일보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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