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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영웅 시대 /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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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시대를 쓰다
관심
5회. 균열의 시작 시대와의 불화  

여러 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두 가지를 믿지 않는다. 하나는 만병통치약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오로지 하나의 정답만 존재한다고 믿는 태도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에는 만병통치약과 유일한 정답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치 과잉의 시대, 이념 과잉의 시대였다. 이념의 인간들은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라면 병든 정치, 병든 경제, 심지어 역사와 미학(美學)의 문제까지 한꺼번에 치료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반대로 유일무이한 자기들의 정답을 승인하지 않으면 보수 반동이거나 무지 혹은 비겁한 자로 치부하겠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 세상사가 어떻게 수학 문제처럼 깔끔하게만 풀리겠는가. 심지어 수학에서도 두 개 이상의 정답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요란한 80년대와 문학을 같이 시작했다는 게 작가로서의 내 불운이었고, 그럼에도 독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 내가 맞닥뜨린 아이러니였다.

그런 모순을 나는 ‘시대와의 불화’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1992년 가을 출간한 첫 산문집 제목이었다. 시대정신이라고 할 만한 어떤 정신적 유행, 그 유행의 이상 열기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장편소설 『영웅시대』의 배경이 된 경북 영양 고향마을을 찾은 이문열씨. 중앙포토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6·25 전후 불행한 가족사 
84년 두 권으로 이뤄진 장편소설 『영웅시대』의 출간이 내가 당대와 불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치기를 부렸던 것인데 『영웅시대』의 ‘작가의 말’에 나는 이런 문장을 썼다.

 

1. 이문열씨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걸고 쓴 대하 장편 소설 '영웅시대'는 아버지의 모델인 이동영과 그의 부인이 펼치는 50년 겨울~54년까지를 그린 작품입니다. 전쟁 당시 점령지 서울 S 대학교 농대 학장인 주인공이 월북후 다시 남하하면서 겪는 이런 저런 이야기와 남겨진 가족, 모친, 마누라, 아이들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으로 구성되죠

2. 그 와중에서 80년대 메이저 작가군의 작품이라고 할수 없을정도로 좌파적인 이론에 대해서 밀도 있게 다루고 있으면서 이문열씨 특유의 '이념-특히 좌-에 대한 허무의식이 배어들어 있는 리얼리티한' 작품입니다.

3. 뭐 가장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건 아무래도 '빨갱이 가족'이 '전쟁중'에 겪는 참상인데요. 군.경의 강제 구금및 학살- 얼핏보면 반공 드라마에서 북쪽 아저씨들이 반공인사 가족을 방법하는 거랑 대단히 비슷합니다.-, 인권침해, 극도의 가난과 친척들간의 백안시및 재산 갈취등이 절절히 배어들고 (물론 특유의 가문 자랑도 조금 나옵니다. -_-;;) 그것이 더 작품의 질을 높이죠

4. 문제는 동영의 일대기를 본다면 지나치게 '작위적'인 구성이 짙습니다. 물론 반공물 비슷하게 간다면 작위적이라고 할수 밖에 없지만, 의문의-나중에 정체가 밝혀지지만- 여인 안나타샤의 출연과 동영이 위기에 처하거나 무슨 고민에 빠질때 불현듯이 나타나는 이전의 선-후배등의 등장인물들이 사실성을 떨어 뜨리고 있죠. ( 어느 평론에 의하면 등장 인물들이 그리스 비극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이라고 할정도)

물론 이러한 인물들간의 '우연적' 구조가 결과적으로는 '동영의 노트'나 '철에게'라는 에필로그적 군더더기에서 보여주는 이문열 특유의 이념 논의로 귀결되는 하나의 단계라고 볼수도 있습니다.-에세이 집에는 맞지만 소설 구성으로는 벩~입니다.

5. 하여간 작품 자체가 당시 이념 묘사+ 리얼리티의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탓에 고전걸작으로도 남을수 있으니 당연히 극화가 되죠. 극본은 신봉승씨가 쓰고 김종학 pd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동영은 현석, 부인은 이혜숙씨가 했고 가장 비중있는 조연인 동영 모친이 '김용림'씨였는데요. 개인적으로 원작의 인물에 가장 맞는 설정이 김용림씨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어 아가씨에 나오는 코믹캐릭터기 보다는 사랑과 야망에 나오는 그 할머니 성격이 짙죠

6. 문제는 최초판 극본 자체는 원작에 대단히 충실하고 이념 이야기도 건드리고 했습니다만, 기관의 압박때문에 방영판은 대단히 많이 수정을 가했습니다. ( 원판은 신봉승씨 개인전집판으로 출판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악마급 먼치킨 북한에 별로 나쁜짓 안하는 남한 (이라고 하지만 모친은 경찰도 나쁜 건 첨이다라고 하더군요 --;;) 잠시 교직으로 밀려난 동영대신에 '아오지 탄광'으로 가는 동영 이야기나, '국제적 걸레' 안나타샤(김영애)가 '러시아 아저씨들과 보드카 빨며 코사크 춤추는' 걸로만 과거가 나오고 (모친은 그게 미군인줄 알았음) 뒷부분은 가톨릭형 신앙기로 나오죠( 원작은 개신교이고 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기야 신봉승씨 최초 극본판은 감옥을 나오는 여주인공으로 끝나죠.)

원작 앞부분에 가장 멋있게 나오는 군우리 대전투의 경우는 -여기서 김철과 동영 처가 옥에서 만나는 미친 여자의 관계가 언급- 폭격 맞아 아작나는 괴뢰군 아저씨로 그리는 바람에 뒷 이야기와 차질이 생기죠-그래도 미친여자는 나오더군요.

7. 대단히 찌질하게 각색해도 많은 부분은 대사와 -김용림씨의 사투리는 벩~이지만- 잔혹 사건-기차 이야기-등은 그대로 나옵니다. 나름대로는 괜찮았지만 신봉승씨는 지금도 대본에 수정이 간것을 안타까와 한다는 후문 -_-;;

이문열씨에 대한 여러 시각에 잠깐만 눈감는다면 괜찮은 작품임

PS: 원작에서 가장 뭉클하게 한 마지막 에필로그 대사는 안나오더군요. 이 제목이 왜 '영웅시대'인지 바로 에필로그에서 나옵니다.

그 뒤에 발표된 변경연작에 보면 남한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자녀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직 사회주의자이자 지금은 미군 양공주 기둥서방으로 살던 '박영규'( 극중 이름)가 사회주의책을 몰래 팔기도 하는 알콜중독의 헌책방 주인으로 나오고, 동영의 큰 아들이 깡패짓하다 잡혀갔을때 그걸 알고 빼주는 경찰 간부가 전쟁때 동영이 구해준 동창이죠. -_-;

모모 여사께서는 변경 연작-정확하게는 마지막 작품-을 쓰레기라고까지 했지만 이문열씨 작품은 적어도 '시인'까지는 추천할만한 작품이죠. 
개인적으로 송지나-김종학 라인보다는 작품성은 신봉승-김종학쪽에 더 둡니다. 뭐 뒷이야기가 있지만 경고감이라 생략.

물론 신봉승씨는 최근 발표한 여러 작을 보면 '공격하라, 물러서지 마라' 수준의 태작을 내기도 하죠-광고도 안하니 알기도 힘들고, 문화방송 프로파간다 괴작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의 원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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