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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마르셀 푸르스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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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의 줄거리

(1) 이 작품은 파리의 부르주아 출신으로, 뛰어난 지성과 섬세한 감성을 소유한 문학 청년 '나(마르셀)'의 1인칭 고백 형식으로 된 대하 소설이다.

 한잔의 홍차에 입술을 적신 프티드 마들렌이 화자인 '나'에게 상기시키는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소년이 매년 휴가를 보내러 갔던 전원마을 콩블레이에는 두 개의 산책로가 있었다. 하나는 파리의 부르주아인 스왕 가(家)의 별장으로 향하는 길인데, 그곳에는 아름다운 딸 질베르트가 있다. 또 하나의 길은 중세 이래의 명문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러한 것들은 소년인 '나'의 마음에 깃들여 있는 두 갈래의 동경의 방향인데, 소설은 이 두 가지의 세계가 세기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융합되고 교차해 가는 모습을 축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

 

 화자는 파리에서 재회한 질베르트와의 아련한 첫사랑이 깨진 후 할머니와 노르망디 해안으로 떠나고, 사교계에 몸담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 휴양지에서 '나'는 또 게르망트 일족의 생 루나 샤르뤼스와 같은 다정한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파리로 돌아온 '나'는 그들에게 이끌려 동경의 대상이었던 생 제르망 가의 귀족사회에 조금씩 발을 들여 놓게 되며, 또한 샤르뤼스를 중심으로 한 괴기한 소돔의 마을에도 가 보게 된다.

 

 한편, '나'는 휴양지에서 만나게 된 알베르틴과 사이가 깊어짐에 따라 그녀가 고모라의 여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질투심에 불타 그녀를 집에 가둬 두고 진상을 캐려 하지만, 이윽고 알베르틴의 죽음으로 인해 그 지옥 같은 동거생활도 막을 내리게 된다

.

 인생에 대한 꿈도, 작가가 되려는 희망도 잃고 삭막한 기분으로 두번째의 요양으로부터 파리로 돌아온 '나'는, 게르망트 공작의 초대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다가 정원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그러자 갑자기 말로 표현할 길 없는 행복감이 온몸을 감싸면서 생 마르코 사원에서 느꼈던 감각과 함께 베네치아의 도시가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그것은 마들렌의 체험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 기억의 출현이었으며, '나'는 이러한 과거와 현재에 공통된 초시간적 인상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임을 깨달으며, 이 기적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게 해줄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이해한다.

 

 살롱에서 만난 옛친구들은 모두 놀랄 만큼 늙어 있었다. 죽은 생 루와 질베르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이 소녀 안에 자신의 소년 시대의 동경이었던 두 가지의 '방향'이 하나로 합쳐져 있음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시간'의 파괴를 초월한 영겁불변의 세계가 존재함을 느끼게 되며, 드디어는 그토록 바라던 작품을 쓰는 일에 착수하기로 결심한다.

 

(2) 20세기 불문학의 최대걸작이자 인간의 상상력이 이룩한 가장 심오한 하고 완벽한 위업 중 하나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7부로 구성되어 있는 대하소설이다. 자신의 지나간 삶 전체를 재구성하기 위해 철학·미술·음악 등이 단 하나의 언어로 서로 통하게 만든 이 책은 어린 시절이라는 옛 고향으로의 초대일 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우리가 얼마나 바보처럼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삶의 의미론이자 해석학이다.

 

 2. 작품의 구성

(1) 제1권 <스완 네 집 쪽으로>

(2) 제2권 <꽃피는 처녀들의 그늘에서>

(3) 제3권 <게르망트 쪽으로>

(4) 제4권 <소돔과 고모라>

(5) 제5권 <갇힌 여인>

(6) 제6권 <도망친 여인>

(7) 제7권 <되찾은 시간>

 

3. 주인공의 역할

 발자크나 스탕달의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대하고 분명 놀라움이나 생경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는 <환멸>의  보드랑이나 <파므로의 수도원>의 파브리스처럼 격정적인 행동에 의해 스토리를 전재해 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나 샤르뤼스, 블로크 등과 같이 각별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도 등장하지만, 그들 역시 행동에 의해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인상파의 그림처럼 다양한 사건과 공간 속에서 조금씩 묘사되며 점차 복잡한 전체상을 나타내 간다.

 

 주인공인 '나'도 작품 속에서 살아서 행동하기보다는 관찰하고 탐색한다는 취지 아래, 마음에 비치는 자연계의 관능적 아름다움이나 사교계의 다양하고 추악한 인간 군상들을 정교한 렌즈처럼 묘사해 내거나,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진 감정이나 감각의 기복을 찬찬히 음미해 가는 것을 주요한 임무로 삼는 일종의 반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소설의 시선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라는 관측기계를 통해 체험되고, 언어로 표현해 내기 힘든 감각이나 심리를 대단히 긴 호흡의 문체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 작품은 제임스 조이스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과 더불어 현대를 문학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20세기 최고, 최대의 소설로 꼽힌다.

 

4. 작품의 의의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아의 철저한 해부와 탐험을 통해 예술로써 구원을 받고자 한다. 그는 시간의 흐름과 그 물결 사이로 교차되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라지는 시간이라는 하루살이 같은 삶 속에서도 영원한 그 무엇이 우리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작가는 어둠 속으로 흘러 들어가 좌초된 잃어버린 시간들을 탐험하면서 진정 가치 있는 것들만 낚아 올려 자신이 바라는 세계를 재창조한다.

 

 그는 작품 속에서 "표면적 자아"와 "심연의 자아"를 구별하고, 심연의 자아를 통해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와 비극적인 인간조건을 깊이 파헤쳤다. 이러한 경향은 작가의 생애에서도 드러나는데, 안일한 사교 생활과 지나친 기교 등으로 특징되는 사교계 청년 프루스트와, 대작 속에 묻혀 임박한 자기 죽음과 시각을 다투며 작품완성에 마지막 순간까지 투혼을 불태웠던 문학순교자로서의 거장 프루스트가 그것이다. 후자의 모습에서 전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망각이야말로 기억을 순수하게 보존해주는 보물창고이며, 그렇게 잊혀진 무의식적 기억은 전혀 우연한 기회에 아주 생생하게 환기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잠시 후면 사라져버릴 시간과 공간의 실재를 되살려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그는 어느덧 그러한 재창조 작업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참된 파악은 무의식적인 기억의 환기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곳에 가게 되면 우리는 거기서 오직 물질적인 장소만이 남아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가 우연이라고 믿는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일이 그것을 연상시켜줌으로써 다시 살아난다. 그러므로 시간은 파괴의 주인공인 데 반해, 기억은 보존과 회생의 마법사이고, 작가의 재창조 작업은 그 기억에 의해서 시간 속에 묻힌 과거의 재생이 가능한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마들렌 과자가 작가에게 지워져 있던 어린 시절을 회상시켜주는 나무나 유명한 일화를 통해 잘 알고 있다.

 

5.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 ∼ 1922)는 1871년 파리 근교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 아드리언 프루스트는 위생학의 대가로 후일 파리 대학의 의학부 교수가 되며, 어머니는 유태계 부르주아 집안의 딸이었다. 프루스트는 어릴 적부터 병약했으며, 9살 때 신경성 천식의 발작을 일으키는데, 이는 평생의 지병이 되어 그를 괴롭히게 된다. 콩도르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대학 법학부에 진학, 그 사이 일찍부터 문재(文才)를 드러내어 동인지나 상징파의 문예지 등에 시나 에세이, 단편소설 등을 발표하며, 유복한 급우들이나 친척들의 소개로 사교계와 문학 살롱에 출입하게 된다. 그는 젊은 시절을 사교계의 총아로서 살롱이나 레스토랑, 그리고 해변에서 생활하기를 즐겼다. 건강악화와 진실의 승리를 상징하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보수적인 상류계층과 관계가 소원해져 사교계를 멀리하게 된다. 그는 이 사건에서 드레퓌스 구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 사교계의 체험을 훗날 대작을 위한 풍부한 소재로 삼았다.

 

 1895년 친구와 브루타뉴에 머물며 삼인칭 자전소설 <장 상튀유>에 착수하는데, 이 글은 여러 해에 걸쳐 단속적으로 집필된다. 그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착수하기까지 여러 해 동안 존 러스킨의 연구와 번역, 프랑스 작가들의 모작에 의한 문체 비평과 소설 형식의 평론들을 발표하다가 이윽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수렴될 사색과 모색을 거듭한다.

 

 1909년 건강이 악화된 가운데서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착수하며, 11년에 제1편 <스왕 가(家) 쪽으로>를 탈고했으나 출판사를 찾지 못해 2년 뒤 자비 출판에 나선다. 제2편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919년에 출판되었으며, 이것으로 이듬해 콩구르 상을 수상한다. 이후 프루스트는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며 작품의 완성을 서둘렀으나, 1922년 11월, 제5편 <붙들린 여자>를 다듬던 중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르한 파묵이 전하기를 이스탄불의 대학생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끼고 다녔다고 합니다. 나무위키의 자료를 참고하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14년에 걸쳐 쓴 4,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소설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프루스트는 ‘의식의 흐름’을 쫓아 유년기의 추억, 가슴 시린 사랑, 전쟁, 시간이 앗아가는 젊음, 필생의 소명에 대한 깨달음 등을 담아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 꼽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장이 미친 듯이 길다는 점, 두 번째는 분량이 많다는 점, 세 번째는 인물은 물론 사물, 예술작품 등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묘사하는데, 그 비유가 뜻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희영 교수는 프루스트는 제임스 조이스와는 달리 난해한 작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화자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닮았지만 프루스트는 논리 정연한 문법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이미 읽어보셨거나, 읽어보려는 생각을 해보셨다면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책 읽는 분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버릇(?)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경우는 “꼬리를 무는 책읽기”라는 이름의 책 읽는 버릇이 있습니다. 읽고 있는 책에서 인용한 책 가운데 특히 끌리는 책은 꼭 찾아 읽는 버릇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꼬리의 꼬리를 물어 읽게 되었습니다.

2012년에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이런 대목이 꼬리를 만들었습니다. “신경과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기도 전에 이미 뛰어난 작가, 화가, 작곡가, 요리사, 등 일급의 예술가들이 알아낸 진실들을, 신경과학을 전공한 저자가 그게 과학적으로 옳았다고 재확인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빛나고 멋있어 보였다.(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227쪽)”라면서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를 소개하셨습니다.

조나 레러는 이 책에서 모두 여덟 명의 예술가 - 요리사도 예술가라 한다면 -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들에서 신경과학의 영역과 관련이 있는 것들을 추출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신경과학적 연구에 의하여 증명되고 있음을 연구논문과 과학자들의 관련 자료들을 인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표제가 된 프루스트의 경우는 기억에 관한 연구를 다루었습니다. 기억은 제가 오랫동안 쥐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기억에 관한 책을 써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기억에 관한 책들을 찾아서 읽어왔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게 된 계기였죠.

2. 이번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읽으면서 어떤 점이 읽기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와 같은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처음에는 막연했지만, 20세기 초반이라는 프랑스 사회에 대한 앎이 부족한 탓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나무위키에서 정리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가 어려운 이유를 찾아내고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문장이 미친 듯이 길다. 두 번째는 분량이 많다. 세 번째로 가장 괴로운 점은 수많은 미술품과 특정 지역에 대한 모습을 빗대어 묘사한 부분이 너무 많아 예술, 특히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들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 등입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고 가장 길다는 문장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저는 실패했습니다. 누리망을 찾아보았더니 원전 기준으로 958단어로 된 문장이 가장 길다고 하는데 번역본에서 어디인지는 확인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부터 많은 자료를 요약하는 습관을 들여온 덕분에 긴 문장을 읽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분량이 많다는 것도 대하소설 몇 작품을 읽어낸 경험이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문학작품의 경우는 작가가 인용한 작품들을 찾아 읽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만, 제가 취약한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영역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해당 작품을 찾아보거나 읽어보면서 이해보려 했습니다.

 

3. “잠을 자러 올라갈 때 내 유일한 위안은 내가 침대에 누우면 엄마가 와서 키스해 주리라는 것이었다.(I-32쪽)”라고 고백한 것처럼 어린 마르셀은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자녀를 키우실 때 잠자리를 각별하게 챙겨주셨는지 경험을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영화나 연속극을 보면 아이들 잠자리를 챙겨주면서 잘 자라는 밤 인사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만, 제 경우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4형제가 모두 한 방에서 잠을 자던 어린 시절 부모님이 따라 잠자리를 챙겨주시지 않았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마치 마르셀이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읽힙니다만, 어머니도 그렇고 특히 아버지는 꽤나 엄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을 채워주다 보면 자칫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성향으로 발전할 것을 우려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잠자리에 들 때를 제외하고는 평소에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졸졸 따라다녔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4. 마르셀이 작가적 소양을 갖추는 데는 할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할머니가 어린 마르셀의 생일 선물로 고른 선물은 뮈세의 시집과 루소의 작품 한권 그리고 조르주 상드의 <앵디아나>였다고 합니다(I-77쪽). 어린 자녀에게 이 책을 권하실 수 있겠습니까?

 

<앵디아나>는 조르주 상드의 첫 소설입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파리 동쪽의 시골 마을 브리를 무대로 세 명의 남자와 여자 주인공 앵디아나(Indiana) 사이에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조르주 상드는 1832년판 서문에 “등장인물들이 사회적 폐단으로 인해 겪는 고통의 울부짖음을 표현하게 되었다면, 만약 그가 더 나은 삶을 향한 그들의 갈망들을 기록함에 주저하지 않았다면, 사회가 그 불평등에 대해, 운명이 그 변덕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11쪽)”라고 적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나오는 <앵디아나>는 어린 마르셀의 생일을 맞아 마르셀의 할머니는 뮈세의 시집과 루소의 작품 한권과 함께 고른 책이었습니다. “좋읽지 않은 책을 읽는 것은 사탕이나 과자처럼 건강에 해롭지만, 천재의 위대한 숨결이 담긴 책은 어린아이의 정신에 대기나 바닷바람이 몸에 끼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지도 않고 아이의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하셨기 때문(70쪽)”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르셀의 아버지는 책 이름을 듣더니 할머니를 거의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는 바람에 조르주 상드의 전원 소설 네 권으로 바꿔 오셨다고 합니다. 책 역시 시청제한 연령이 있는 영화나 연속극처럼 읽기에 적절한 나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앵디아나>를 읽어보았습니다만, 어린 마르셀이 읽기에 적절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5.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I-86쪽)” 프티트 마들렌을 홍차와 함께 마시는 순간 어릴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게 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현대의 뇌과학에서 기억의 회상을 이야기할 때 인용하는 유명한 대목입니다. 미각은 물론 후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이 오래 전의 기억을 불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옛 추억을 되살리는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계신지 이야기해봅니다.

 

프루스트는 마들렌 조각이 든 홍차를 한 모금 마신 것으로 옛 기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AI가 작성한 글에 따르면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느 감각이 가장 민감한가 하는 문제는 적용하는 기준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보수용량의 측면에서는 시각이 압도적이고, 자극에 대한 반응속도로는 촉각이 가장 빠르며, 광범위한 자극을 감지하기로는 청각이라고 합니다. 여러 종류의 자극을 구별하는 능력은 후각이 뛰어나서 수천에서 수만 가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번 맡은 냄새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어서 기억과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프루스트가 인용한 미각은 다른 감각보다는 덜 민감한 편이라고 합니다.

기억을 회상하는 것은 일종의 조건반사적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감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경우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특별한 상황이 있기는 합니다. 바로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하는 <Song for Anna>를 들으면 대학시절 좋아했던 여자 친구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이 연주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조건을 형성했던 모양입니다.

 

6. 스완은 베르뒤렝 부인의 살롱에서 소개받은 오데트에 매혹되어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가다가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아 차를 마시게 됩니다. 이날 스완은 오데트의 집에 담배 케이스를 놓고 왔다. 한 시간 쯤 뒤에 오데트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왜 당신 마음도 두고 가지 않으셨나요. 마음이라면 돌려드리지 않았을 텐데(II-67쪽)”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특별한 무엇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요즘에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한다고 합니다만, 아쉽게도 저는 그런 무엇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생면부지의 여성 앞을 지나면서 손수건을 떨어트리는, 생각해보면 치졸한 짓도 벌이던 시절이었지요, 앞서 말씀드린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주변에서 많이 응원해주었지만 친구 이상으로 발전시켜볼 수 없었던 것도 그 특별한 무엇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유행하던 카드점을 쳐보면 안된다는 점괘가 반복된 것도 원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심하게 해주곤 했던 것인데 무심한 것은 무심하게 받아들였던 모양입니다.

 

### 주요 주제

- **시간과 기억**: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작용을 탐구합니다.

- **사랑과 질투**: 인간 관계에서의 사랑과 질투의 복잡함을 묘사합니다.

- **예술과 삶**: 예술이 삶을 어떻게 반영하고 초월하는지를 탐구합니다.

- **사회와 계층**: 귀족 사회의 위선과 개인의 내적 갈등을 보여줍니다.

 

### 작품의 의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간 경험의 깊이와 복잡성을 탐구하는 걸작으로, 현대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프루스트는 시간을 초월하는 예술의 힘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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