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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헤르만 헷세 의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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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데미안》의 한 구절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 구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성장에 대한 대담하고 관통하는 듯한 묘사, 휴머니즘적 이상과 고도의 스타일에 대한 전범이 되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쓰기'라는 한림원의 노벨 문학상 수여 사유처럼, 청춘의 고뇌와 휴머니즘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헤르만 헷세(Hermann Hesss, 1877~1962, 독일 태생)의 <데미안>은 '나'를 찾아가는 숭고한 순례자의 길에 대한 탐색이다. 곧 에밀 싱클레어의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고1 때 도서관에 앉아서 읽었다. 책을 읽다가 줄을 쳐 암송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  책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그 후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은 내가 사랑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나'를, 진짜 '나'를, 참 '나'를 탐색해가며 겪는 다양한 체험, 만남을 다룬 일종의 '성장의 이야기'(성장소설)이다. 그 서사의 진행 선상에서 싱클레어는 성장의 단계마다 조력자를 만나 자신의 세계와 타자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자신만의 눈을 갖게 된다.

 

막스 데미안, 프란초 크로머, 베아트리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 신학생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가 '나'를 찾아가는 성장(변신)의 길에서 만난 소중한 조력자이다. '나'를 찾아가는 숭고한 순례자의 길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싱클레어가 자신의 굴레를 벗고 새로 변신하여 바깥세상으로 도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줄탁동기(啐啄同機), 병아리가 부화하여 빛을 보기까지는 안에서 병아리와 밖에서 어미 닭이 동시에 협력하여야 하듯, 한 사람이 알을 깨부수고 새로운 자아로, 새로운 자기의 존재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영적 눈뜸을 도와주는 사람을 시의적절할 때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타인이 만들어 놓은 관념이나 관행, 통념, 기준에 갇혀 살지 않고 나의 내면의 소리, 뜨거운 생명의 소리, 피의 소리, 영혼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따라 진짜 '나'로 살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 <데미안>의 중심 스토리다.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듯 싱클레어가 내면의 자아를 깨워가는 긴 서상의 여정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알의 세계에서 알을 깨부수고 알 밖으로 나와 새가 된 이야기, 나를 가두고 있는 알을 깨고 나와서 오직 나의 신을 찾아 날아간 이야기, 이분법적 틀 안에 갇혀 있던 눈이 열려 자기만의 눈을 갖게 된 싱클레어의 이야기이다.

'나'에게로 향한 자는 고독한 자다. 고독한 자는 자기에게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좇는 통념이나 선입견에 매몰되지 않는 자다. '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자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독서하고, 혼자 산을 오르고, 혼자 여행하며 생각하기를 즐기는 자다. 싱클레어는 외로운 자가 아니라 내면의 자아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품은 고독한 자다. 그러므로 혼자만의 고뇌의 시간을 누릴 때 최고의 안식을 누리는 자다. 자기를 완성해 가기 위한 탐구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성실한 자이다.

 

데미안이나 싱클레어는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살지 않는다. 관념의 체계 안에 갇힌 자가 아니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열망의 혼불이 꺼지지 않은 사람이다. 싱클레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내 생명 안의 피의 속삭임을 듣고 고독한 삶 가운데서 ‘나'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싱클레어는 유복한 가정에서 안락하게 지낼 수 있었으나, 그는 자기 스스로 발견하고 깨달아 구축한 자기 자신의 성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한 인간이 자신을 이루어가는 길에는 우연한 결과가 없다. 내 안에 간절히 원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뤄진다. 자신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변화시켜 나아가는 자에게는 모험과 투쟁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과한 자라야 자유의 새가 되고 나비가 되며, 아브락사스, 나의 신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역설하고 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다.

결국, 이미 만들어진 자기를 깨부수고 내 안의 ‘참 자아’를  찾아가는 모험과 탐색의 이야기인 것이다. 싱클레어가 알에서 알을 깨부수고 알 밖으로 나와 새가 된 이야기. 나를 가두고 있는 관념과 틀을 깨고 새로이 새가 되어 오직 나의 ‘신의 세계’로 옮겨가는 혁명적 이야기.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새로이 자신을 창조해 가는 변화의 이야기. 삶은 이 변화의 흐름 위에 지은 흔들림임을 보여주는 소설이 <데미안>이다.

 

 

 에밀 싱클레어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에서 자라난다. 하지만 그는 곧 세상이 그의 가정처럼 찬란하고 밝은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또래 집단에 끼기 위해 그 우두머리 격인 프란츠 크로머에게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으로 꾸며 대야했고, 그들과 어울리며 엿보게 된 어둡고 은밀한 악의 세계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그 어둠에 대한 유혹과 자신의 타락에 대한 당혹감 사이에서 방황하던 싱클레어는 어느 날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려주고, 크로머에게 얽매어있던 싱클레어를 해방시켜 준다.

 가정과 사회의 금욕주의적인 가치관과 금지된 것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던 싱클레어는 베크의 유혹으로 어두운 뒷골목의 타락을 맛보게 되고, 성적인 충동을 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 점차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모든 긍정적인 가치를 부정하게 된다. 그러다 베아트리체를 만나면서 어두운 충동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안정을 찾아간다. 싱클레어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초상화의 모습이 점차 데미안을 닮아간다. 그의 마음속에는 데미안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있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지구 위로 날아오르려 하는 새의 그림을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그리고 데미안의 답장인 듯한 쪽지를 받는다.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새에 대한 이야기와 아프락사스라는 신 족의 이름이 쪽지에 적혀 있다. 아프락사스를 찾아 헤매던 싱클레어는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에게서 빛과 어두움, 선과 악,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품은 아프락사스에 대해 듣는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길에서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알게된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탄생의 괴로움과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싱클레어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나고 싱클레어와 데미안 모두 참전한다. 전쟁 중 싱클레어는 부상을 당해 야전 병원으로 옮겨지는데, 옆 자리에 데미안이 나란히 누워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언젠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면 너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옆 자리에 데미안이 없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다가 친구이자 인생의 스승이었던 데미안과 완전히 닮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데미안』은 어른이 된 싱클레어가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온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첫 번째 일화는 싱클레어의 열 살 때의 기록이다. 싱클레어는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온화하고 다정함이 가득한 가정에서 단정하게 자라난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하고, 그것을 자랑삼던 친구 프란츠 크로머에게 과수원에서 커다란 자루에 하나 가득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하면서부터 싱클레어의 평화롭던 세계는 요동치기 시작한다.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모아둔 돈을 가져오고, 줄 돈이 없을 때는 도둑질도 하며, 심지어 누나를 데리고 나오기까지 하는 등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선의 세계’에 속한 가족에게 자신의 두려움을 고백하지 못한다. ‘악한’ 자신이 있는 세계는 ‘선한’ 가족의 세계와 선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때 나타난 것이 싱클레어의 학교로 전학 온 막스 데미안이다. 어느 날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가오고 카인과 아벨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이야기한다.

 『데미안』은 어른이 된 싱클레어가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온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싱클레어는 이런 데미안의 주장이 자신의 전에 겪었던 자신의 문제가 모든 생명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기숙학교에 들어가면서 데미안과 헤어진다. 묘한 공허와 고립감을 느끼며 시간은 흘러가고 자신의 불완전한 신념에 혼란스러워 한다. 음주와 같은 금지된 규칙을 어기고, 뜨거운 희열을 맛보며 최악의 낙제생으로 지내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다소 남성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인 한 소녀를 보게 된다. 비록 그녀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싱클레어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하나의 상징으로 삼는다. 친구들과 함께 한 방탕한 생활을 접고,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림을 완성됐을 때 그 그림 속 모습은 신기하게도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어느 날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책갈피 사이에서 종이쪽지 하나를 발견한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한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싱클레어는 이것이 데미안이 보낸 쪽지임을 확신한다. 데미안의 쪽지에 담긴 ‘아프락사스’. 는 고대 신의 이름으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의미의 신’이다. 이것은 절대 선과 절대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하나의 세계에 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헤세의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시기 싱클레어는 반복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이 무렵 작은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끌려 간 곳에서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난다. ‘아프락사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의 스승이 된다.

 

  절대 악과 절대 선이라는 경계를 그어놓고 판단하는 세계는 다분히 폭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옳고, 너희는 그르다' 라는 사고는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처럼 전쟁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역사의 어느 순간을 보아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독재자가 나타나 자신이 보는 세계가 절대적인 선이라 여기며 했던 수많은 비극을 생각해보라. 나의 종교만이 옳고, 나의 세계관만이 정당하다는 논리가 부른 비극적인 사태들을 생각해 보라. 제국주의, 인종주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들. 나는 선이요, 너희들은 악이다라는 논리는 선으로 악을 깨부수어야한다는 논리로 이어져 수많은 유혈 사태를 만들어내었다.

 새가 알을 빠져나와 향하는 곳은 ‘아프락사스’라는 신의 곁이다. 헤르만 헤세는 ‘아프락사스’를 통해 특정한 편견에 갇혀 타자를 배척하는 삶을 지양하며, 타자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세상과 다른 특별한 해석을 했던 데미안을 인정하고 그가 제시한 방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라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한 인간 속에 내재한 ‘의지’가 자유로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프락사스’를 향한 삶은 아닐까.

깊은 사색과 삶에 대한 통찰,천착을 느낄 수 있는-내가 글을 쓰게 되는데 큰 모티브가 되어준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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