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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만엽 시인의 연작시 [바람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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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엽 시인의 연작시 - 바람

바람-1 ~ 박만엽
언제부터인가 우린 친구가 되었다.
볼 수도, 보이지도 않는 녀석
그대의 향기를 날라줄 땐
단지 코끝을 자극할 뿐...
가끔은 천지를 뒤집어 놓는 
몹쓸 녀석이기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니
용기 있는 녀석이기도 하다.
'사랑한다.'...
그 한마디조차 못해
입이 굳어버린 나를 비웃듯
그 녀석은 울 줄도, 소리도 낼 줄 안다.
(MAY/17/2009)

바람-2 ~ 박만엽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여주는 것은 
그 녀석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늘 한 곳에만 
서 있는 운명을 타고난 우린 
그 녀석만이 움직임을 맛보게 하여 준다 
봄이 되어 꽃을 피우면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온몸을 간질여주고 
늦가을에 잎이 퇴색되면 
가지를 마구 흔들어 
그 추악함을 날려버린다 
가끔 비가 올 때면 목욕도 하지만 
온몸을 말려주는 것도 
그 녀석이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염문을 뿌리는 녀석이지만 
난 온종일 애타게 기다린다. 
(MAY/14/2010)

바람-3 ~ 박만엽 
그 녀석은 추운 것도 모른다
하늘이 감싸주지 못하면
늘 다른 곳으로 간다
오직 받기만 하는 녀석처럼
초라하게 태어나 한 곳에만 자라
움직이지 못하고 상처만 받던 들꽃이
벌이 되어 바람처럼 날아간다
오늘은 이 꽃으로
내일은 저 꽃으로
벌이 된 들꽃은 이젠 바람이 되었다
소박한 꽃으로 되돌아오기엔
너무 멀리 간 자유로운 바람이 되었다.
(JAN/19/2012) 

바람-4 ~ 박만엽
해먹 위에서 
잠자는 아이처럼 
바다가 잔잔히 일렁이면
그 녀석은 풍문을 전하려 
이미 떠난 버린 뒤다
돌아올 땐 
전해준 풍문만큼이나
그쪽에서 들은 풍문을 가지고 와
풀어놓기도 하지만 
늘 달갑지만 않다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이 아프다고 했다
한 마을을 이유도 없이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믿을 수 없는 녀석이지만
그 녀석을 따라 그대 곁으로 
황급히 날아본다.
* 해먹(hammock): 나무 그늘 같은 곳에 달아매는 그물침대
(MAR/20/2017) 

바람-5 ~ 박만엽
그 녀석이 강한 회오리를 일으켜
나를 허름한 창고에 가두어 버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창고 구석에 사무실로 보이는 곳으로
급히 몸을 피해 문을 닫아버렸지만
그 녀석을 막을 순 없었다
숨이 막힐 듯한 적요가 잠시 흘렀다
왠지 그 녀석은 순한 양이 되었고
온몸에 땀이 버짐 피듯 번져나갔다
그 녀석은 뒤를 돌아서서
서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여자의 향기가 진동했다.
(MAR/24/2018)

출처 :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글쓴이 : coolmo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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